남한강 가의 찬년고찰 여주 신륵사 2014, 6, 14

2014. 6. 27. 15:38경기도

신륵사는 경기도 여주, 봉미산 남쯕 기슭에 여강(驪江)이라 부르는 남한강 가에 자리잡고 있다.

신라 때 창건된 후, 고려 우왕 때 나옹선사가 돌아가신 곳으로 유명하며 조선시대에는 세종의 능이 인근 능서면 왕대리로 이장되면서 왕실의 원찰이 되어 잠시 보은사라고도 불리기도 했다.

입장료가 2200원인데 매표소에 사람이 없어 무단 침입 했다는...

일주문을 지나 대왕문을 통과...

강가에 그림같은 정자 강월헌이 있고 나옹선사가 입적한 자리에 세웠다는 삼층 석탑이 있다. 삼층석탑은 곧, 나옹선사의 무덤이 된다는 얘기다.

신륵사는 아름다운 경관과 많은 유물·유적들을 간직하고 있지만 정작 이 절의 내력은 소상치가 않다.

 

신라 진평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설이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유물이나 유적이 없고, 고려 우왕 2년(1376)에 나옹선사가 입적하면서 유명한 절이 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조형물도 모두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의 것이다.

양주 회암사에 머물던 나옹선사가 왕명을 받고 밀양땅 형원사(瑩源寺)로 갔다.

회암사를 중수하고 낙성회를 여는데 여인네들이 비단과 곡식을 가져다 공양하러 몰려들어 생업을 포기할 정도였다.

나중에는 조정에서 사신을 보내어 산문을 닫아도 막을 수 없는 정도에 이르렀고, 급기야  밀양땅 형원사를 한시 바삐 떠나라고 명령했던 것이다.

나옹선사의 그 진한 종교적 매력과 호소력은 다름아닌 중생구제의 원(願)이었겠으나 시대가 그를 수용하지 못했던 것 같다.

나옹선사는 이미 병이 깊었던 모양인데 왕명이 떨어졌으니 길을 달려 이곳까지 왔다.

선사는 더 이상은 못 가겠다며 신륵사로 들어갈 것을 재촉하였고, 이곳은 선사의 열반지가 되었다.

그때 하늘에선 오색구름이 산마루를 덮고 용이 호상하는 등 신이한 일이 벌어지면서 세상에 이름을 떨쳤다고 전한다.

스러져가던 신륵사를 대대적인 중창불사로 일으킬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고려시대의 유일한 다층전탑으로 기단부는 화강암으로 쌓았다.

보물 제 225호로 지정되었다.

다층전탑에서 내려다 본 삼층석탑과 강월헌

대장각기비

 

이 비는 대장각을 세운 내력을 새긴것으로 고려말 충신, 목은 이색이 공민왕과 부모의 명복을 빌고자 보제존자 나웅의 제자들과 함께 발원하여 대장경을 인쇄하고 보관하기 위하여 이 곳에 세웠다. 

보물 230호로 지정되어있다.

구룡루

 

나옹선사가 아홉 마리의 용에게 항복을 받고 그들을 제도하기 위해 지었다는 전설의 누각이다.

 

극락보전

 

아미타불 도량인 신륵사 금당이다. 유형문화재이다.

고려시대 이후 시인 묵객들이 묵어 가며 자연을 노래했던 적묵당(寂默堂)

적묵당의 측면에는 부서진 기와를 이용해 둥글게 쌓은 굴뚝이 있는데 매우 특이하다.

유형문화재 195호 팔각원당형석조부도와[뒤] 문화재자료 제 134호인 원구형석조부도[앞]

 

스님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만든것인데 어느 스님의 사리가 봉안되어 있는지는 기록에 없다.

보제존자[나옹선사] 석종부도가 있는 곳으로 오르는 계단.

보물 3기

 

석종[보물 제 228호]

석종비[보물 제 229호]

석등[보물 제 231호]

 

신륵사에서 세상을 떠난 고려말기의 승려 나옹의 사리를 모신 종모양의 부도

나옹의 묘탑과 영정을 모신 진당을 조성한 내력을 작은 비

나옹의 부도를 밝히기 위해 세운 석등

명부전

절에서 본 남한강...

신륵사로 부르게 된 유래는 "미륵 (혜근을 가리킴)이, 또는 혜근이 신기한 굴레로 용마(龍馬)를 막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고려 고종 때 건너마을에서 용마가 나타나났는데 너무 사나워 사람들이 붙잡을 수가 없었는데, 이 때 인당대사(印塘大師)가 나서서 고삐를 잡자 말이 순해졌으므로, 신력(神力)으로 말을 제압하였다 하여 절 이름을 신륵사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고려 때부터 벽절[甓  寺]이라 불려지기도 하였는데, 이는 경내의 동대(東臺) 위에 있는 다층전탑(多層塼塔)을 벽돌로 쌓은 데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은행나무....

때이른 살사리꽃이...

 

남한강을 조망할수 있게 만든 누각인듯...

 

신륵사 앞, 신접리 고인돌

 

북방식 지석묘로 북내면 신접리 56번지 민가에 있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겼다.

돌아 오는 길에 장독대가 있는 '이천 쌀밥집'에서 점심을 먹는다. 예전에 친정엄마랑 먹던 생각에 눈시울을 붉히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