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1. 14. 20:23ㆍ서울
창덕궁은 조선의 궁궐로,
1405년(태종5) 경복궁의 이궁으로 동쪽에 지어졌고
이웃한 창경궁과 서로 다른 별개의 용도로 사용되었으나
하나의 궁역을 이루고 있어 조선 시대에는 이 두 궁궐을 형제 궁궐이라 하여 ‘동궐’이라 불렀다.
1592년(선조25) 임진왜란으로 모든 궁궐이 소실되고 광해군 때에 다시 짓는 과정에서
고종의 아버지 인,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기 전까지 조선의 법궁(法宮) 역할을 하였다.
또한 조선의 궁궐 중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임금들이 거처했던 궁궐이다.
현재 남아있는 조선의 궁궐 중
그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창덕궁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었다.
돈화문 [보물 제383호]
창덕궁의 정문으로 1412년(태종 12)에 건립되었다.
2층 누각형 목조건물로 궁궐 대문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이다.
돈화문 2층 누각에는 종과 북을 매달아 통행금지 시간에는 종을 울리고 해제 시간에는 북을 쳤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전소되었다가 광해군이 즉위한 이듬해인 1609년에 재건되었다.
인정전(仁政殿:국보225호)
창덕궁의 정전(正殿)으로서
왕의 즉위식, 신하들의 하례, 외국 사신의 접견 등 중요한 국가적 의식을 치르던 곳이다.
희정당(熙政堂:보물815호)
침전에서 편전으로 바뀌어 사용된 곳
동궁이 공부를 하던 전각
낙선재(樂善齋)(보물:제1764호)
조선 24대 임금인 헌종은
김재청의 딸을 경빈(慶嬪)으로 맞이하여 1847년(헌종13)에 낙선재를 지었고,
이듬해에 석복헌(錫福軒)을 지어 수강재(壽康齋)와 나란히 두었다.
낙선재는 헌종의 서재 겸 사랑채였고,
석복헌은 경빈의 처소였으며,
수강재는 당시 대왕대비인 순원왕후(23대 순조의 왕비)를 위한 집이었다.
헌종은 평소 검소하면서도 선진 문물에 관심이 많았다.
그 면모가 느껴지는 낙선재는 단청을 하지 않은 소박한 모습을 지녔으며,
석복헌에서는 순종의 비 순정효황후가 1966년까지 기거하였고,
낙선재에서는 영왕의 비 이방자 여사가 1989년까지 생활하였다.
석복헌(錫福軒)
순종의 비 순정효황후가 1966년까지 기거하였던 곳.
낙선재 일원
낙선재 일원
낙선재 뒷편의 아름다운 정자. 상량정
담장 너머의 단풍
'서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올림픽공원의 가을 아침... 2017, 11, 14 (0) | 2017.11.22 |
---|---|
창경궁의 가을... 2017, 11, 12 (0) | 2017.11.18 |
상암동 하늘공원에서... 2017, 10, 23 (0) | 2017.10.25 |
올림픽공원의 아침... 2017, 08, 02 (0) | 2017.08.03 |
봉은사의 연꽃... 2017, 07, 19 (0) | 2017.07.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