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경궁의 가을... 2017, 11, 12

2017. 11. 18. 12:28서울

          창덕궁 후원의 단풍이 한창이었지만 인원제한에다, 차례를 기다려 가려면 오후 2시가 넘어야 해서

함양문을 넘어가서 창경궁을 돌아 보았다.


          창경궁의 단풍이 절정이어서 오길 잘했다는 마음으로 즐겁게...


통명전의 뒷편


통명전(通明殿)은 (보물 제 818호)로,

창경궁의 가장 깊숙한 곳에 왕비의 침전으로 내전의 으뜸 전각이다.


통명전은 희빈 장씨의 인현왕후 저주사건이 있던 곳이다. 

1694년 (숙종 20) 갑술환국으로 인현왕후가 복위되자 희빈으로 강등된 장씨는 인현왕후를 저주하며 처소인 취선당에 신당을 차리고 통명전 일대에 흉물을 파묻었다.

희빈 장씨는 이로 인하여 사약을 받게 되고, 시신은 정문인 홍화문 남쪽에 있는 선인문을 통해 나가게 된다.


통명전 옆의 양화당[좌측전각]은

인조가 병자호란 후 남한산성에서 돌아와 이곳에서 장기간 머물렀다.

 

양화당은 

인조가 청나라 사신을 접견한 곳이기도 하고, 25대 철종의 왕비 철인왕후 김씨가 간병을 받다 승하한 곳이기도 하다.

지금의 양화당은 1830년(순조 30)화재로 불탄 것을 1834년(순조 34)에 재건한 것이다.


춘당지


이곳에는 연못이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지금의 춘당지로 부르는 아래쪽의 이 연못이 원래 내농포로 국왕이 궁궐 안에서 직접 농사짓는 의식을 행했던 곳이었다.

1909년에 일본인들이 이곳에 연못을 만들었고, 1986년에 우리 전통양식에 가깝게 재조성한 것이다.

위쪽의 작은 연못이 원래의 춘당지이다.


춘당지




천연기념물인 원앙새가

좀전까지 잘 놀더니 나무그늘로 휴식하러 들어가서는 나오지 않는다.








천연 기념물 백송


명정전(明政殿) (국보 제 226호) 

 

창경궁의 으뜸 전각인 정전(正殿)으로, 국왕의 즉위식, 신하들의 하례, 과거시험, 궁중연회 등의 공식적 행사를 치렀던 장소이다.

인종이 이곳에서 즉위했으며, 1759년(영조 35) 6월 66세의 영조가 15세의 정순왕후를 맞이하는 혼례(또는 가례(嘉禮))가 치러지기도 했다.

 

1484년(성종 15)에 창건되어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16년(광해 8)에 재건되어 현재에 이르니, 현존하는 조선 궁궐의 정전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경복궁의 근정전과 창덕궁의 인정전이 중층 규모로 거대하게 지어진 것에 비해 명정전은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다.

이는 애초에 창경궁이 정치를 위해 지은 궁궐이 아니라 왕대비 등의 생활공간으로 지은 궁궐이기 때문이다.


보수중이어서 유리로 막은 창으로 담았다.



     문정전


창경궁의 편전으로,

국왕이 관리들과 만나 업무 보고를 받고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던 집무실이었다.

문정전은 임진왜란 때 불에 타 광해군 8년(1616) 다시 지었고,

현재의 건물은 일제 강점기에 철거되었던 것을 1986년에 다시 지은 것이다.

     이곳은

     영조가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라고 명하고 서인으로 폐한 곳이기도 하다. 

그 후 뒤주는

홍화문 남쪽에 있는 선인문 안뜰로 옮겨졌고,

사도세자는 8일 동안 굶주림과 더위에 신음하다가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