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여후, 다시 가본 창덕궁... 2020, 02, 01,

2020. 2. 2. 21:49서울

전 세계가 우환폐렴으로 겁을 머고 있는 요즘,

일주일전에 꽃나들이를 약속한 지인들이 못 먹어도 고? 창경궁엘 가자는데...ㅉㅉ

더구나 고궁은 중국 관광객들이 우글거리는 곳이라 좀 께림칙하긴 했다.


마스크로 무장하고 그래도 막상 나오니 기분도 좋고

생각보다 중국 관광객들이 많지 않았다.


창경궁을 가기위해선

안국역에서 창덕궁을 통해 입장하는것이 편하다.


창덕궁 진선문 앞 화단에, 영춘화가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궐내각사앞 중국 처자들...


창덕궁은 법궁 인, 경복궁보다 왕들의 사랑을 더 받은 이궁이다.


1392년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는

1394년 수도를 한양으로 정하고 궁궐, 경복궁을 지었다.


태조는 여덟 명의 아들 중, 막내인 방석에게 왕위를 물려줄 생각이었으나

다섯째 아들 방원이 사병을 이끌고 난을 일으켜 자신과 반대편에 선 형제 방석과 방번,

조선을 세우는데 크게 공헌한 정도전 같은 신하들을 무참히 살해한다.

이 일이 바로 1398년에 일어난 제1차 왕자의 난이다.


권력을 잡게된 방원은

형 방과를 2대 왕 정종으로 임금 자리에 앉힌다.

 

왕위에 오른 정종은 다음 해에 수도를 옛 고려의 수도였던 개경으로 옮겼으나

왕위에 욕심이 없었던 정종은 즉위한 지 2년 만에 동생 방원에게 왕위를 물려주게 된다.


이방원은 3대 태종으로 왕위에 오른 후, 한양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으나

형제의 난이 일어났던 경복궁으로 돌아가는 것이 께름칙하여

경복궁 동쪽에 새로운 궁궐을 세우도록 했고, 그렇게 지어진 것이 창덕궁이다.



창덕궁의 정전 인정전


왕들의 즉위식이 거행됐던곳이다.


인정전은 파란만장했던 조선 왕조의 역사를 말해주는 건축물 중 하나이다.

태종 때 처음 지어진 뒤 임진왜란과 화재로 세 번이나 잿더미로 변했다.

오늘날 볼 수 있는 인정전은 1804년에 지어진 네 번째 건축물이다.


인정전




낙선재일곽


낙선재는 헌종이 후궁을 위하여 마련한 공간이다.


비운의 마지막 황태자로 왕위에 오르지 못한 영친왕이 머물기도 했다,

고종의 7번째 아들이었던 영친왕은 일본에 볼모로 끌려가 일본식 교육을 받았고

일본 왕족인 이방자(마사코) 여사와 결혼했다.

독립 후 1963년 귀국하여 이곳에서 살다 생을 마감하였다.


낙선재 일원


홍매화가 화려하게 반겨주는 곳이다.


봉오리 맺힌 홍매화


기와에 앉은 직박구리


소나무 숲길


외국 관광객들...


왕궁에서 예술 중... ㅉㅉ


진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