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나들이... 2017, 08, 15

2017. 8. 20. 21:37인천

친정 쪽

사촌형제들의 모임을 강화도에서 가졌다.

번족한 집안이어서, 많은 인원들이 모인 가운데 45인승 대절 버스로 투어를 하였다.

광복절에다, 종일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였지만

강화에 터전을 잡고 오랜 세월 살아오신 사촌 언니 내외분의 덕택으로 아주 즐거운 여행을 하였다.


강화 역사 박물관


강화동종


조선 숙종 37년(1711) 강화유수 윤지완이 주조한 것을 그후

유수 민진원이 정족산성에서 현재와 같은 형태로 다시 주조한 동종이다.


총중량이 3,912㎏에 높이가 198㎝이고

구경이 138㎝에 달하여 조선 시대 후기 동종으로는 거종에 속한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고종 3년(1866) 병인양요 때 침입한 프랑스군이 종을 약탈하여 가려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한다.


청자진사연화문표형주자


고려

무신정권기의 권력자였던 최항의 무덤에서 출토된 고려청자로

왕실 못지않은 당시 귀족들의 화려한 생활상을 엿볼수 있다.


움집


고인돌


고인돌



보문사 일주문


석모도 낙가산 보문사는

남해 보리암, 낙산사 홍련암과 함께 우리 나라 3대 해수 관음도량이다.

 

경전에 의하면 관음보살이 머무는 남해(南海)의 섬을 낙가(洛迦)라 하고,

광대무변한 서원을 실천하는 몸과 장(場)이 보문(普門)이다.

 

 따라서 낙가산 보문사는 그대로 관음보살의 터전이며 상징이다.


보문사의 범종은

1975년에 고 육영수 여사가 시주하여 만든 것으로 알려져 유명해졌으며,

조성 당시 우리나라 최대 규모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나한석실


700년 넘는 수령을 자랑하는 향나무 지척의 석실에는

어부가 바다에서 건졌다는 나한상들이 모셔져 있다.

 

이 땅에서는 드문 석굴사원으로 ‘나한전’이라고도 한다.


22기의 나한상 앞에 예불을 올리는 신도들과 스님.


승려들의 식사 도구로 쓰였던 대형멧돌


와불이 모셔진 와불전


극락전 뒤로,

400여 개의 돌계단을 오르면 처마처럼 드리워진 눈썹바위 아래 마애불과 만난다.

 

눈썹바위 밑으로

네모진 얼굴에 커다란 보관을 쓴 관음보살은 1928년, 일제강점기에 조성됐다.


중생들의 간절한 소원 하나쯤은 반드시 들어준다는 영험한 부처로 소문났다.


오백나한상


석모도를 달리다 보면

무슨 섬에 이렇게 너른 들녘이 있을까 신기해진다.


석모도의 평야는 간척의 결과다.


송가도·매음도·어유정도·석모도 각각의 섬들이 간척을 통해 지금의 석모도가 되었다.


투어 중에 어시장에 들렀다.

사촌들은 해산물을 사느라 흥정을 하고 나는 빗속에 우산을 바쳐들고 바닷가를 걸어 본다.








석모대교


석모도는 얼마전까지 배를 타고 건넜지만 지금은 다리가 놓아져 차를 이용해 들어갈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