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산 최경환 성지... 2021, 02, 27

2021. 3. 1. 23:03성지.성당

수리산 성지는 

최경환(프란치스코) 성인이 잠들어 있는 성지(聖地)다.

[과거엔 과천, 현재는 안양]

 

기해박해(1839년) 때 천주교인들이 숨어 들어와

담배밭을 일구며 신앙 공동체를 이룬 교우촌이었다.


이 마을을 교우촌으로 개척한 사람이 최경환
 성인이다.

 

최경환 성인

최양업 신부(우리나라 2번째 사제)의 아버지로

1804년 충청도 홍주(현 홍성)에서 태어났으며

박해를 피해 고향을 떠나 서울의 벙거지골[현, 회현동],

강원도 금성, 경기도 부평 등지로 옮겨 다니다가 정착한 곳이

이 골짜기로, 산을 일구어 담배를 재배하며 신앙생활을 지켜나갔다.

 

그러나 기해박해의 거센 물결이 이 마을에도 밀려 와

1839년 7월 31일 성인을 비롯한 40명의 교우들이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었으며,

성인은 40여일의 고문 끝에 포도청에서 숨을 거뒀고(9월 12일),

그의 처, 이성례 마리아는 다른 여교우 한 명과 함께 이튿날 수구문 밖에서 처형당하였다.

 

이보다 훨씬 전에 최경환의 막내아들인 젖먹이도 옥에서 죽었다.

 

최경환의 맏형인 최 야고보가 동생의 시신을 수습하여

생전에 그가 살던 수리산의 마을 옆에 묻어주었다.

 

세월이 지남에 따라 그의 무덤은 세인들의 머릿속에서 잊혀져갔는데

1929년 용산 신학교의 피숑(Pichon, 宋) 신부의 노력으로 그의 무덤이 확인되었고,

 유해는 이듬해 5월 26일 명동성당으로 옮겨졌다. (현재는 절두산 성지).

 

 

수리산 성지 성당. 외장의 적조는 순교자들의 피를 상징한다.
최경환 성인의 흉상

 

성당 내부, 바닥은 온돌이며 감실은 성체 현시를 겸하고 있다.
최경환 성인의 고택. 일곱가족이 생활한 집터이다.
고택의 내부
성인 묘소로 오르는 십자가의 길,
최경환 성인의 묘소
성당
최경환의 처[최양업 신부의 모친] 이성례 마리아의 집
수리산으로 들어가는 길목의 문등바위.

이 바위의 유래는 실제 문둥이들이 살았다는 설이 있고

담배촌 교우들이 외부의 접근을 피하기 위해 헛소문을 냈다는 설이 있다.

원래 이 바위는 개울까지 닿을 정도로 큰 바위여서

수레가 겨우 지나갈 정도였는데

일제 때는, 아름드리 벌목으로,

6.25이후에는 미군부대가 들어오면서 바위를 깍아 작아졌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