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관 가실성당(佳室聖堂)... 2022. 08. 27

2022. 9. 3. 09:24성지.성당

 

160년(1861)이 넘었다는

왜관의 가실성당을 찾았다. 

 

먼 길 고단해도

파란 가을 날씨가 너무 좋아 순례길이 즐거웠다. 

 

 

경북 칠곡군 왜관의 가실성당과 구사제관은 

2003년도에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 348호로 지정되었다.

 

 

 

실학자이자 천주교 신자였던

창녕 '성성섭'의 증손 '성순교'가 살던 집

1895년 파리외방전교회 가밀로 신부가 사들인 것이 출발점이다.

 

경북에선

대구 계산성당(1798년) 다음으로 오래된 성당이다. 

 

낙동강 가실 나루터가 바로 앞에 있어

다른 지역으로 쉽게 선교를 다닐 수 있었기 때문에

6.25때 이북 원산에서 왜관으로 월남한 성 베네딕도 수도회의 신부들이

1952년부터 가실성당을 위한 사목을 맡았다고 한다.

 

가실성당에 속해 있다가, 갈라져 나간 성당은 모두 4개이다.  

김천 황금동 본당(1901), 용평 본당(1907), 퇴강 본당(1923), 왜관 본당(1928) 

 

 

聖가정상

 

 

​1914년 일제가

행정구역을 낙산리로 바꿔 부르는 바람에 낙산성당으로 불리다가

2005년에 원래 이름인 가실성당으로 이름을 되찾았다.

 

한자로는 아름다운 집이라는 佳室이지만

원래는 갈대가 많아 아름답다는 뜻에서 가실이라 했다고 한다.

 

성당 건물은 3년에 걸쳐 1923년 말 완공했으며

전체적인 건축 양식은 고딕, 종탑은 로마네스크식 벽돌 건물이다.

 

파리 외방전교회 프와넬(박도행) 신부가 설계했는데

서울 약현성당(지금 중림동성당). 전주 전동성당, 익산 한옥 나바위성당과

대구 계산성당, 성베네딕토 왜관수도원 구성당까지

많은 성당을 설계한 인물이다.

 

공사를 감독한 프와넬 신부는

다른 성당과 마찬가지로 중국인 기술자들에게 일을 시켰는데

구워낸 벽돌을 일일이 망치로 두들겨 확인한뒤 최상급은 본당에

중간치는 사제관에 사용하고 나머지는 버렸다고 한다.

 

6.25 당시, 가실 성당은 

인민군 야전 임시병원이었다가 후에 유엔군 병원으로 사용했다. 

그래서 무사히 오늘에 이른다고 한다.

 

 

본당 내부

 

십자고상이 걸려있는 자리는

원래 주보성인인 성안나 모녀상이 있었다가 1964년에 바꿨다.

 

 

감실

 

앞면을 칠보로 표현한 '엠마오'이다.

 

부활한 예수가  

엠마오에 신비로우면서도 인간적인 모습으로 나타난 순간을 담았다.

 

제대 천장에서 늘어뜨린 성체등

 

가실성당은 전등을 사용하지않고

지금도 사제가 직접 파라핀을 채워 심지 불이 꺼지지 않게 한다고 한다.

 

주보 성인 성 안나 모녀상 (제대 오른쪽)

 

예수의 외할머니이자 성안나가

 마리아에게 책을 ​읽히고 있고 어린 성모의 모습은 이채롭다.

 

가실 성당을 건립 할때 

프랑스에서 들여온 석고상으로 우리나라엔 유일무이한 성 안나상​이라고 한다.

 

성 안나를 ​주보성인으로 모시는 곳은  가실성당뿐이라고 한다. 

 

종탑

 

미사 시작 5분전에 종을 울린다고 한다.

종은 보이지 않음

 

실제종

 

 

 

 

야외미사터

 

 

야외미사터 제대에서 본 풍경

 

 

구사제관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과 야외미사터.

십자가의 길 14처는 타일로 구워 만든것이라고 한다.

 

 

넓은 주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