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세계문화유산] 겨울 나들이... 2021, 12, 28

2022. 1. 2. 15:11서울

창덕궁

북악산 왼쪽에 자리 잡고 있는 조선의 궁궐이다.


1405년(태종5) 경복궁의 이궁으로 
조선의 궁궐 중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임금들이 거처했던 곳이다.

창덕궁은

자연과의 조화로운 배치와 한국의 정서가 담겨있다는 점에서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었다.

 

 

돈화문[보물 제 383호]

 

규모와 품위를 함께 갖춘,

창덕궁의 정문이다. [1412년(태종 12)에 건립]


궁궐 대문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이며, 
임진왜란 때 전소되었다가 1609년에 재건되었다.

 

 

돈화문 안쪽

 

 

금천교와 진선문 [금천교는 보물 제 1762호]

 

태종 11년(1411)3월에 설치한 금천교는 

숱한 화재와 전란에도 불구하고 

현존하는 궁궐 안 돌다리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한다.

 

 

 

 

인정문(仁政門). 인정전의 정문 [보물 제 813호]


효종· 현종· 숙종· 영조 등

여러 임금이 이곳에서 즉위식을 거행했다.

 

 

인정문에서 본 인정전

 

 

인정전(仁政殿)[국보 제 225호]

국가의 중요한 의식을 치르던 창덕궁의 정전으로
1405년(태종 5)에 창덕궁 창건과 함께 지어졌다.

 

5대 궁궐 중,

창덕궁 인정문과 인정전 용마루에만 있는 오얏꽃 문양

 

오얏은 자두의 순우리말로 

태조실록에서부터 李氏 성을

조선의 뿌리가 깊고 근본이 튼튼한 오얏나무에 비유했다.

 

오얏꽃 문양은 1897년 대한제국이 출범한 이후

국장(國章), 화폐, 훈장과 황실용 자기에 쓰이면서

황실의 상징이 되었으며 창덕궁 용마루의 오얏꽃 문양은

1907년 순종이 즉위해 창덕궁으로 올 무렵에 새겨 붙였다고 한다.

 

인정전

 

 

측면에서 본 인정전.

 

 

희정당(熙政堂)[보물 제 815호]

침전에서 편전으로 바뀌어 사용된 곳

창덕궁에서

왕이 가장 많이 머물렀던 실질적인 중심 건물로

1917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1920년에 복구하면서

경복궁에 있던 강녕전을 옮겨 지었다고 한다.


희정당 내부는

쪽마루와 카펫,유리 창문,

천장에 샹들리에 등을 설치하여 서양식으로 꾸며졌다.

 

희정당 정문.

 

서구식 돌출 현관이 이채롭다.

문 위쪽 중앙에 금빛 오얏꽃 문양이 박혀 있다.

 

 

낙선재(樂善齋) 일원 [낙선재 보물 제 1764호]

헌종의 검소한 면모가 느껴지는 곳

조선 24대 임금인 헌종이

경빈(慶嬪)을 맞이하여 1847년(헌종13)에 낙선재를, 지어 기거하게 하였으며

영왕의 비 이방자 여사가 1989년까지 생활한 곳이다.

 

 

左측 전각부터 '칠분서' 中 '삼삼와' 右 '승화루'

 

삼삼와는 육우정이라 불리던 육각형의 정자 형태 건물로 

이곳의 기능은 서적을 보관하던 곳으로 추정되며 

칠분서와 마찬가지로 이름의 의미를 찾을수 없다고 한다.

 

봄철이면 홍매화가 아름답게 피어 인기가 많은 곳이다. 

 

 

창덕궁 매표소 앞, 해치[해태]

 

선악을 구별하고 정의를 지키는 전설 속의 동물이다.

예로부터 화재와 재앙을 막는 상서로운 동물로 여겨져 궁궐 입구 등에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