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 쌍계사/ 화개장터

2014. 4. 2. 11:39경상도



 

일주문을 통과하고 천왕문을 통과했는데 그 뒤에 또 하나의 문이 있다.


금강문이라 하여 천왕문과 함께 사찰에 들어 갈때 불법을 수호하고 속세의 더러움을 씻어낸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쌍계사는

723년(성덕왕 23)에 의상의 제자인 삼법이 당나라에서

“육조혜능의 정상을 모셔다가 삼신산의 눈 쌓인 계곡 위 칡꽃이 피는 곳에 봉안하라.”[설리갈화처]는 꿈을 꾸고 귀국하였다.


한라산. 금강산 등을 두루 다녔으나 눈이 있고 꽃이 피는 땅을 찾지 못하다가,

지리산에 오자 호랑이가 길을 안내하여 지금의 쌍계사 금당(金堂) 자리에 이르렀다.


그곳이 꿈에 지시한 자리임을 깨닫고

혜능의 머리를 평장한 뒤 절 이름을 옥천사라 하였다.


그 뒤 840년(문성왕 2)에

진감국사가 중국에서 차(茶)의 종자를 가져와 절 주위에 심고 대가람을 중창하였다.

 

정강왕 때

쌍계사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벽암(碧巖)이 1632년(인조 10)에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옮김-

 

 

 

 

 

 

 

 

 

 

 

 

 

 

 

 화개천에서 벚꽃 축제 노래자랑

 

화개장터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 줄기 따라 화개장터엔/

아랫말 하동사람 윗마을 구롓사람 닷새마다 어우러져 장을 펼치네/

구경 한번 와 보세요 보기엔 그냥 시골 장터지만/

있어야 할 건 다 있구요 없을 건 없답니다 화개장터.”

우리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노래 「화개장터」는

도시민들에게는 고향의 향수를, 시골사람들에게는 옛날의 추억을 되살리며 그곳으로 가 보고 싶다는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지금의 화개장터는 채 50m도 못 되는 거리에 40~50평 넓이의 작은 시골 장터이다.

오가는 물건도 여느 장과 다를 바가 없고, 옛날과 같은 북적거림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