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덕수궁 관람... 2024. 11. 12

2024. 11. 17. 11:24서울

덕수궁은
월산대군의 집터였던 것을
임진왜란 이후 선조의 임시거처로 사용되어
정릉동 행궁으로 불리다가 광해군 때에 경운궁으로 개칭되었다.
 
이후
1907년 순종에게 양위한 고종이 이곳에 머무르게 되면서
고종의 장수를 빈다는 의미에서 덕수궁(德壽宮)이라 다시 바꾸었다.

 

덕수궁의 정문은
정전의 정남쪽에 있던 인화문이었는데,
1906년 중건공사를 하면서 정전의 동쪽에 있던 대안문(大安門)을 수리하고
그 명칭도 대한문(大漢門)으로 고쳐 이 문을 정문으로 삼았다.
 
대한문은 1968년 도시계획에 의하여
덕수궁 담장이 안쪽으로 옮겨지면서 1970년에 안으로 옮겨졌다.
 

한복차림의 외국인 단체 관람객들...
 

중화문
 

중화문에서 본 중화전(덕수궁의 정전. 보물 제819호)
 

석조전
 
대한제국 말기에 지어진 신 고전주의 양식의 궁전이다.
 

단풍이 고운 풍경
 

석어당
 
덕수궁의 침전(寢殿)으로
건물의 명칭인 석어당(昔: 옛 석, : 어거할 어, 堂: 집 당)은
'옛 임금이 머물던 집'이라는 뜻으로 임진왜란으로 한양을 떠났던 선조
1593년(선조 26)에 돌아왔을 때 머물던 건물이라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다. 

석어당은 2층 목조건물로

즉조당과 함께 덕수궁 내에서 가장 유서깊은 건물이다.

 

또한

석어당이라는 이름은

인조반정으로 폐위된 광해군이

이곳에서 인목대비에게 무릎을 꿇었다고 해서 붙여졌다고도 한다. 

 

준명당과 즉조당
 
준명당은 고종이 업무를 보던 편전이며
즉조당은 광해군과 인조가 왕위에 오른 곳으로 두 건물은 복도로 연결되어 있다.
 

정관헌
 
1900년경
고종의 침소 인, 함녕전 후원에 지어진
동양과 서양의 건축양식이 절충된 독특한 건물이다.
 
기둥 윗부분과 난간에는
모란과 박쥐 소나무 사슴등 한국 전통 문양이 새겨져 있다.
 
역대 왕의 초상화 인, 어진을 모셔두기도 했고
고종의 어진과 순종의 황태자 시절 초상화 인,
예진을 그리던 공간으로 쓰이기도 했다.
 

정관헌 옆에 참싸리꽃이 만발
 

연못가의 단풍
 

덕수궁 돌담길

 
 

정동전망대에서 본 덕수궁 전경
 
주말에만 개방하던것을
단풍철이라 한시적으로 평일 오후 1시30분부터 개방함
 

수문장 교대식
 
오전 11시와 오후 2시
 

 

 

덕수궁 관람을 끝내고 시청역으로 가는 길에 화단에 핀 용담
 

이름모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