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천주교회의 '카타콤브' 진천 배티성지... 2015, 10, 04

2015. 10. 6. 00:27성지.성당

 '카타콤브'는 은화[숨은꽃]란 뜻이다.

 

충북 진천에 있는 배티 순교성지는 천주교신자들의 비밀 교우촌이었으며,

우리나라 두번째 신부인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땀과 신앙이 어려 있는곳,

한국 최초의 신학교[카톨릭 대학의 효시]... 그리고 순교자들의 본향으로 한국 천주교회의 '카타콤브'라 불린다.

 

 

 

최양업 신부 동상

 

최양업 신부는 최경환 프란시스코 성인과 이성례 마리아 순교자의 장남으로,

한국 천주교회의 첫번째 신학생이었고 김대간 신부에 이어 두번째 사제이다.

 

선종하는 순간까지 한달이면 3일정도만 잠을 잤고, 1년에 약, 7,000리를 걸어 다니며 조선의 복음화를 위해 일생을 바친 땀의 순교자이다.

그러나, 과로와 장티프스로 병사[病死]를 했기 때문에 성인 반열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배티성지에서는 최신부의 시성시복을 위한 현양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1836년 중국 마카오로 유학을 떠난 최신부는

그 곳, 신학교와 필리핀 마닐라, 만주의 소팔가자 등지를 전전하며 공부를 한 끝에 1849년 4월 15일 상해에서 사제서품을 받는다.

 

최신부는 중국 요녕성의 한 성당에서 7개월간 시목하다가 귀국한다.

 

귀국한 최신부는 남한 일대 흩어져 있는 교우들을 찾아 길에서 살며 순방하면서

1853년도에 베티를 본당 중심지로 삼았다.

 

'배티'는 돌배나무가 있는 작은 언덕'이란 뜻으로 이티라 불려지다 배티로 명칭이 바꼈다고 함...

 

첩첩산중 오지라, 장마로 길이 끊길때나, 눈이 많이 와 통행이 어려울땐, 배티 사제관에서 저술에 몰두해 최초로 한글 교리서와 기도서를 짓는다.

 

최신부는 1861년 6월 15일 만 40세에 과로와 장티푸스로 길에서 사망하고 만다.

 

이후 그분의 시신은 진천 공소에 가매장 되었다가 같은 해. 11월 초에 제천 배론성지로 옮겨져 안장되었다. 

 

최양업 신부 선종 50주년 기념 성당[배티성지의 아랫 성당이라 불림]

성모상과 구절초

성당 내부 [미사 시작 전...]

 

십자가의 길 오르는 길에 세워진 순교현양비

 

1866년 병인박해 때,

배티와 인근 교우촌에서 체포한 천주교 신자들을 관아로 압송하던 포졸들이 주막에서 술을 마시는 동안

신자들을 묶어 놓았던 돌기둥이라 전해지는 선돌이라고 한다.

 

1949 백곡 저수지 축조로 수몰 되었다가

1980년 큰 가뭄때 드러나 옛 두건마을 수몰터에서 배티성지로 이전되어 1982년 9월 27일 제막되었다.

 

 

 

 

 

 

 

 

매괴장미

 

 

중국에서만 자라는 종자로

배티성지 주임이신 김웅렬 신부님이 음성 감곡 매괴성당에서 사목할 당시 어렵게 구해 심은것을 배티성지로 오시면서  분양해 온 장미리고 한다.

 

십자가의 길

 

 

진천 곳곳에 흩어져 있던 교우촌의 이름을 따 마련한 쉼터가 14개가 있다,

혼자 혹은 여럿이 기도하면서 생각하면서 쉬어 가는 자리...

배티성지의 윗성당

야외 미사터

야외 미사터의 [중]대형 성모상

최양업 박물관 가는 길에 세워진 형구돌

본래, 큰 규모의 건축에 사용되던 석물이었으나 천주교 박해때, 교수형구로 전용되었다고 한다.

2009년 충북 괴산의 연풍지역에서 발견되어 이 곳으로 이전되었다.

 

붉은 빛을 띄고 있는 이 돌은 비가오면 더욱 선명한 핏빛을 낸다고 함...

처형장면

최양업 박물관

 

아래 사진 일부는 박물관에서 촬영했음...

 

발자국

기도

생전에 최신부가 즐겨 치던 올겐의 모양이었을거라 추정 함...

미사 집전 중...

최신부의 친필

최신부의 일대기...

 

 

당시 사용한 형구들...

프란시스코 교황님과 두개의 의자

작년 한국 천주교 순교자 시복식을 위해 오신 교황이 앉을 의자를

특별히 제작해 마련했으나 교황께서는 '내겐 너무 큰 의자'라고 사양했다고 함... 

교황께서 실제 앉으신 의자...

박물관에서 본 아랫성당 뒷모습

곱게 물든 핏빛 단풍

어랫성당 뜰의 구절초

 

 

한국 최초 가톨릭 신학교 입간판

최초 신학교 가는 길에 103위 성인 계단

신학교 앞, 최양업 신부 동상

한국 최초 신학교 모습

 

신학교 옆, 십자가의 길 14쳐

14인 무명 순교자 무덤

 

배티 골짜기에 비밀리에 교우촌을 형성하여 숨어 살던 신자들은 1866년 병인박해때,

장사꾼의 밀고로 포졸들의 습격을 받아 대다수 죽게 된다.

간신히 살아 남은 신자들은 포졸들이 물러가자 급히 시신을 수습해 이 고갯마루에 묘를 만들었다.

 

박해가 끝난후부터 년중 찾아와 벌초를 하며 이들의 신앙을 닮아가길 간구한다고 함.

 

교회의 전승과 전문가들의 검증을 토대로 이 묘역을 순례지로 단장하였고

충청북도에서는 2011년도에 이곳을 [기념물 150호]로 지정하였다. [최양업 신부 선종 150년]

돌아 오는 길, 안성 들판...

 

 

 

흐르는 곡, 구노의 아베마리아/플래시도 도밍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