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 솔뫼성지[聖地]를 찾아... 2014, 7, 9

2014. 7. 11. 00:32성지.성당

순교 정신이 깃들어 있는 한국 최초의 카톨릭 사제 김대건 신부의 탄생 성지로

충남도 지정문화재 기념물 제146호 인, 솔뫼 성지...

 

교황 성하께서 오는 8월 15일 광화문 광장에서 성인 시복식을 마치고 솔뫼를 방문하신다는 성지를 미리 찾아봤다.

가는 길에 잠시 쉬며 행담도 휴게소에서 본 서해대교...

성지에 도착하니 비가 내린다. 제주도등, 남해안엔 태풍 소식이 있다

성지 입구...

사무실 벽면에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를 환영하는 프랭카드가 걸려 있다.

대형 십자가...

본당[왼쪽]과, 기념관[오른쪽]

성당은 물 위에 떠 있는 수반의 형상으로 김대건 신부가 직접 지어 중국을 오가는 수단으로 사용했다는 목조선 ‘라파엘호’를 상징한다. 

교황 성하의 대형 초상화...

 

방명록에 이름을 적고 관리인에게 교황 성하께서 이 곳에 오시게 되어 좋으시겠다고 인사를 건네니 한 쪽 폐를 절제하신터라 더운 여름 날, 건강에 무리가 되시지 않을까 염려스럽다고 한다.

본당과, 기념관 들어 가는 곳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생가...

이곳은 한국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안드레아가 1821년 출생하고 7살 때까지 자란 생가다.

증조부 때 천주교를 받아들이고 작은 할아버지를 거쳐 아버지까지 독실한 천주교 신자가 된 한국 가톨릭 신앙의 뿌리다.

증조부부터 김대건 신부까지 4대에 이른 순교자를 배출한 곳이다.

댓돌 옆, 기도문... [작은 아들의 성인이시라 특별한 마음으로 기도 함...]

대청마루 중앙 기둥에 성인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나의 발길을 오래도록 머물게 한...

 

생가 뒤란...

솔뫼 성지 전경 일부...

성모상...

'솔뫼'는 소나무가 우거진 작은 동산이라는 뜻이다.

소나무 사이로 보이는 성인의 생가 뒤 편...

소나무 동산의 성인의 동상 [동상의 뒤 흰 조형물은 흰 옷을 입은 성모님을 상징한다고 함]

 

예수 고난의 길, 14처

14처의 상징하는 조형물 중 하나... 미켈란젤로 작품인, '피에타'를 연상하게 한다.

 

 휘어 자란 소나무들의 모습에서 문득 느낀 애처로움은 증조부, 조부, 부친 그리고 자신까지 4대가 순교한 사연을 기억하기 때문이리라.

 

 

 

 

14처의 전경 일부...

 

돌아 나오는 길에 대형 십자가를 올려다 보며...

'아레나' 공연장으로 12사도의 동상을 바치고 석주가 빙 둘러 서 있다. '아레나'는 로마의 원형 경기장에서 따 온 이름]

 

 

아레나 공연장의 증앙... 교황께서 이 곳에서 연설을 하게 된다. 2000명 수용...

 

 

교황 방문에 더불어 아시아 청년 연설도 하시는데 6000명을 수용하는 원형식 공연장이 성지 밖에서 한창 공사 중이다.

성지엔 6만명이 방문할 것으로 알려져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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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5년 을사박해를 시작으로 100년여의 세월동안 병오박해 때 순교한 김대건 신부(1822-1846).

신심을 버리기만 하면 당장 해방 될 수 있건만 온갖 핍박에 굴하지 않고 스스로 고난의 길을 걸은 103위 순교 성인 품위에 오른  인물이다.

 

초창기 한국 천주교회사는 박해의 역사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질곡의 세월을 겪게 된다.

1785년 을사박해를 시작으로 100여년의 세월동안 박해를 받게 되면서 많은 사람이 순교하게 된다.

박해의 원인은 천주교가 제사를 모시지않아 미풍양속을 해치는 그릇된 사교라는 이유와 당파싸움과 연결된 정치적인 이유가 있다.

 

당시 로마 교황청에서는 제사 때, 지방(紙榜)을 써 붙이는 의식을 치르는 한국의 전통적인 미풍영속을 미신으로 간주하여 엄격히 금하고 있었다.

이러한 제사 문제가 발생하자 파벌(시파, 時派)을 적대시하던 벽파(僻派)에서 천주교를 박해하면서 남인들을 대거 숙청하려고 했다.

1801년, 조정에서는 천주교 금지교서를 발표하고 전국적으로 수많은 신자들이 순교하기에 이르며 대표적인 4대 박해 사건이 생겨난다.

신유(1801년), 기해(1839년), 병오(1846년), 병인(1866년)

 

 김 신부의 증조부인 김진후 비오는 세례를 받은 후 벼슬도 버린 채 신앙생활에 전념하던 중, 10여년을 홍주, 전주, 공주 등의 감옥에 갇혔다가 1814년 해미에서 76세로 일생을 마감했다.

그후, 할아버지를 따라 경기도 용인으로 이사하여 성장하게 된다.

 

1836년 16세 때 신학생으로 뽑혀 마카오로 건너가 신학을 공부하여 1845년 상하이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으며, 그 해 10월 귀국한 그는 '은이' 마을에 공소를 세워 용인 일대에서 선교활동을 시작했고, 귀국한지 불과 1년이 지나기도 전인 1846년 6월에 체포되어 그 해 9월 새남터에서 순교하기에 이른다.

생가터를 지나 성지의 남쪽 끝은 김대건 신부의 일대기와 천주교 박해역사를 둘러볼 수 있는 기념관이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그의 출생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그의 활동과 업적, 체포와 순교 4대 박해, 한국교회사 등에 관한 자료와 함께 희귀 성물도 전시되고 있어서 천주교의 생활문화도 엿볼 수 있다.

 

 

*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는 알았을까...200년 후, 교황이 그를 찾을 줄...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노래 [가톨릭 성가 287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