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경궁. 춘당지 원앙새. 창덕궁 돌아 보기... 2024. 02. 25

2024. 3. 1. 12:22서울

창경궁에 갈때의 마음은
대온실 꽃들만 살펴볼 예정이었는데 
춘당지에 원앙새도 많이 와 있었고 
주변에 새들도 많은 곳이어서
대온실에서 나와 몇 걸음 더 걸었다. 
 

춘당지(春塘池)
 
춘당지는
현재 두 개의 연못으로 나누어져 있으나
원래는 뒤쪽의 작은 연못이 조선시대 때부터 있었던 본래의 춘당지이다.
 
그러나 1909년 일제가 창경궁을 훼손할 때
이 자리에 연못을 파서 유원지로 만들었다.
 
이후
1986년 창경궁 복원 때
춘당지 가운데에 섬을 조성하여
우리나라 전통양식에 가깝게 다시 조성하였다.
 

능수버들에 물이 오르기 시작하고 
봄처녀도 나들이 납시었다.
 

춘당지 연못의 물이 녹으면서 다시 찾아온 원앙새들...
 

 
 

 
 

짝짓기철이라 암컷을 차지하려고 수컷들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원앙새들의 움직임

 
 

명정전(明政殿). 국보 제226호
 
명정전은 창경궁의 정전으로
왕의 즉위식, 신하들의 하례, 과거시험,
궁중연회 등 중요한 국가행사를 치르던 곳이다.
 
명정전은 1484년(성종 15)에 지어졌고,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16년(광해군 8)에 재건되었는데,
현재 궁궐의 정전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경복궁의 근정전과 창덕궁의 인정전은
중층 규모이지만 명정전은 단층으로 지어졌다.
 

문정전(文政殿)
 
문정전은 창경궁의 편전으로,
왕이 신하를 만나 업무 보고를 받고,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던 집무실이다.
 
그러나 편전 외에 왕실의 장례 때
혼전(魂殿, 왕과 왕비의 신주를 종묘로 모시기 전까지 임시로 신주를 모시는 건물)으로 쓰인 경우도 있었다. 
 
문정전은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광해군 때에 다시 지었고, 일제강점기 때 소실되었다가 1986년에 다시 복원하였다.
 
마당에서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게되는 비운을 겪은 곳이기도 하다.
 

가을의 잔재가 남아있는 궁궐의 뜰
 

노랑지빠귀
 

자경전(慈慶殿) 터
 
높은 지대에 자리잡아 전망이 좋은 이 터는
대비의 침전 인, 자경전이 있던 곳이다.
 
1777년에 정조가 어머니 인, 혜경궁 홍씨를 위해
멀리 동쪽의 아버지 시도세자의 사당이 있는 경묘궁을 향하도록 지었으며
뒤편에는 아름다운 계단식 후원이 있었다.
 
한중록( 閑中錄 또는 恨中錄 )의 산실이기도 한
이 건물은 19세기 후반에 철거되었다.
 
한중록은 사도세자의 아내 혜경궁 홍씨가 말년에 
자기 일생을 회고하면서 쓴 책이다.
 
이후 일제 강점기에는 근대적 왕실 도서관 인,
장서각이 들어섰다가 1992년에 철거 되었다.
 
 

세계문화유산 인, 창덕궁의 전각들... 
 
칠분서ㅡ 삼삼와ㅡ 승화루
곧 있으면 만첩 홍매가 아름답게 피는 곳이다.
 

자시문 앞, 홍매 상황
 

인정전(仁政殿)[국보 제 225호]

국가의 중요한 의식을 치르던 창덕궁의 정전으로
1405년(태종 5)에 창덕궁 창건과 함께 지어졌다.
 
5대 궁궐 중,
창덕궁 인정문과 인정전 용마루에만 있는 오얏꽃 문양
 
오얏은 자두의 순우리말로 
태조실록에서부터 李氏 성을
조선의 뿌리가 깊고 근본이 튼튼한 오얏나무에 비유했다.
 
오얏꽃 문양은 1897년 대한제국이 출범한 이후
국장(國章), 화폐, 훈장과 황실용 자기에 쓰이면서
황실의 상징이 되었으며 창덕궁 용마루의 오얏꽃 문양은
1907년 순종이 즉위해 창덕궁으로 올 무렵에 새겨 붙였다고 한다.
 

금천교(보물 제1762호)와 진선문 
 
태종 11년(1411)3월에 설치한 금천교는 
숱한 화재와 전란에도 불구하고 
현존하는 궁궐 안 돌다리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한다.
 

우수관의 덮개
 

돈화문 (敦化門) 보물 제 383호
 
규모와 품위를 함께 갖춘,
창덕궁의 정문이다.
[1412년(태종 12)에 건립]

궁궐 대문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이며, 
임진왜란 때 전소되었다가 1609년에 재건되었다.
 
돈화문은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