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 14. 21:47ㆍ성지.성당
둔토리 굴아위 은신처는 청계산 국사봉 등성이에 위치한 동굴로
1886년 병인박해 당시 새남터에서 순교한 서 루도비코 볼리외 [한국명, 서몰례(徐沒禮)] 신부가 박해를 피해 숨었던 곳이다.
프랑스 태생인 루도비코 신부는
1864년 사제품을 받음과 동시에 한국의 선교사로 임명되어 1865년 5월 브르트니에르(de Bretnie‵res, 白, 1838~1866, 유스토) 신부, 도리(Dorie, 金, 1839~1866, 헨리코) 신부, 위앵(Huin, 閔, 1836~1866, 마르티노) 신부 등과 함께 한국에 입국하였다.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볼리외 신부는 묘르니[卯論里](현 성남시 운중동) 마을에 머물면서 교우들이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을 염려하여
청계산 중턱, 둔토리 굴아위 동굴속에 숨어 지내면서 밤이면 교우들을 찾아 다녔다.
같은 해 2월 27일 새벽,
교우 장제철의 밀고로 체포되어 손골(孫谷)에서 붙잡힌 도리 신부와 함께 다음 날, 28일 한양으로 압송되었다.
3월 7일 베르뇌(Berneux, 張敬一, 1814~1866, 시몬) 주교, 브르트니에르 신부, 도리 신부와 함께 새남터에서 순교를 한다.
그의 나이 26세였다.
순교한 지 2개월여가 지난 3월 28일(음)에 박순지(요한) 등 몇몇 신자들이,
볼리외 신부와 다른 6명의 시신을 찾아내 새남터 부근에 임시로 묻었다가 4월 14일(음)에 (용산구 한강로 3가의 왜고개) 이장하였다.
그 후 7명의 유해는
1899년10월 30일에 발굴되어 용산 예수성심신학교에 안장되었다가, 다시 1967년에 절두산 순교 기념관으로 옮겨져 안치되었다.
1984년 5월 6일 방한 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둔토리 은신처 오르는 길
국사봉 방향 철쭉 능선
은신처 전경
은신처 내부
어른 5명 정도 앉을수 있는 크기의 넓이다.
누군가 걸어놓은 낡은 묵주
안에서 내다 본 ...
십자고상과 조화의 조화...
동굴에서 본 풍경
하산길에 돌아본 산길
성급히 피는 개나리...
성 서 루도비코 신부는 경기도 의왕시 하우현 성당의 주보 성인으로 모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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