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 적멸보궁이 있는 태백 정암사 2014, 6, 13

2014. 6. 18. 00:10강원도

 신나는 레일바이크 승차 체험을 마치고 저녁 식사로 한우 구이를 먹고 숙소인, 카지노 쪽으로 차를 몰았다.

정선 카지노의 밤은 황홀하고 아름다웠으나 생각했던것보다 추운 날씨에 어서 들어가 쉬고 싶은 생각에...ㅠㅠ

 

 다음날, 새벽에 밖을 보니 주변은 온통 안개가 깔렸다.

탄광촌이었던 사북 시내가 보인다.

 이른 시간에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이 있는 정암사를 찾았다.

 새벽에 사찰을 찾는 이는 없었다.

안개비만 부슬 거릴뿐...

 신라 때, 자장율사가 선덕여왕 14년(645)에 태백산 서쪽 기슭에 창건하였다고 하며, ‘숲과 골짜기는 해를 가리고 멀리 세속의 티끌이 끊어져 정결하기 짝이 없다’ 하여 정암사(淨岩寺)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오대산 상원사, 양산 통도사, 영월 법흥사, 설악산 봉정암과 더불어 석가의 정골사리를 모시고 있는 5대 적멸보궁의 하나이며, 창건 설화로 자장율사와 문수보살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수수한 단청이 눈길을 끈다.

 

 자장율사가 석가모니불의 사리를 봉안했다고 전해지는 수마노탑으로 오르는 돌계단...

고요한 시간이라 발소리 죽이고 올라가며 세었는데 108계단이다. [제대로 세었다면...]

 

 정암사 수마노탑은 신라의 모전석탑 전통을 잇고 있으며, 조성시기는 고려시대로 추정된다.

돌을 벽돌모양으로 깎아 쌓은 모전석탑은 국내에 24점이 분포하며 그 중 상륜부가 완벽하게 존재하는 것은 수마노탑 뿐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재질은 석회암과 유사한 고회암으로 국내에서 매우 희귀하며 지역적 특성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1964년 9월 3일 보물 제410호로 지정되었다.

 

수마노탑에 불사리가 봉안돼 있기 때문에 법당[적멸보궁]에는 불상을 모시지 않고 있다.

 수마노탑에서 내려다 본 정암사 전경

 

 수마노탑 아래, 나란히 자리한 적멸보궁으로 건너는 다리... 그 아래 흐르는...

 

정암사가 얼마나 정갈하고 청정한 곳인지는 이곳이 열목어 서식지라는 데서 짐작할 수 있다.

열목어는 물이 맑고 찬 곳에서만 자라는 천연기념물이다.

 적멸보궁을 감싸고 있는 낮은 돌담이 정다워 눈여겨볼 만하고,

 고색창연하고 단아하게 자리하고 있는 적멸보궁

  적멸보궁의 마당에 있는 자장율사의 주장자

 

이 주목은 약 1300년전 자장율사가 정암사를 창건하고 평소 사용하던 주장자를 꽂아 신표로 남긴 나무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가지 일부가 회생 성장되고 있어 자장율사의 옛 모습을 보는듯 하다.[안내비에서...]

 새벽 염불 소리만이 적막을 깬다. 번뇌와 집착을 버리라고....

 범종각

 

 

당나라에서 귀국하여 불교의 융성에 힘쓰던 자장율사는 28대 진덕왕 때 대국통(大國統)의 자리에서 물러나 강릉에 수다사를 세우고 살았다.

어느날 한 스님이 꿈에 나타나 “내일 너를 대송정(大松汀)에서 보리라” 하였다.

놀라 깨어난 자장이 대송정에 이르니 문수보살이 나타나 “태백의 갈반지(葛磻地)에서 만나자” 하고 사라졌다.

그 말을 따라 태백산에 들어가 갈반지를 찾아 헤매던 자장은 큰 구렁이들이 나무 아래 서로 얽혀 또아리를 틀고 있는 것을 보고, 갈반지라 여겨 ‘석남원’(石南院, 곧 정암사)을 지었다.

자장은 석남원에 머물며 문수보살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어느 날 다 떨어진 가사를 걸친 한 늙은이가 죽은 개를 삼태기에 싸 들고와 “자장을 보러 왔다” 하였다.

자장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늙은이를 쫓아버리게 하였는데 “아상(我相)이 있는 자가 어찌 나를 볼 수 있으리오” 탄식하고는  삼태기를 뒤집으니 죽은 강아지가 푸른 사자로 변하였다.

늙은이는 사자를 타고 빛을 뿌리며 하늘로 솟구쳐 올라갔는데 바로  문수보살이었던 것이다.

자장이 그 뒤를 곧 바로 쫓았으나, 이미 문수보살이 사라진 뒤였다.

이후 자장은 몸을 남겨두고 떠나며 “석 달 뒤 다시 돌아오마. 몸뚱이를 태워버리지 말고 기다려라” 하고 당부하였다.

그러나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한 스님이 와서 오래도록 다비하지 않음을 크게 나무라고 자장의 몸뚱이를 태워버렸다.

석 달 뒤 자장이 돌아왔으나 이미 몸이 없어진 뒤여서 “나의 유골을 석혈(石穴)에 안치하라”는 당부를 하고 사라져버렸다.

한편, 자장이 사북리의 산 꼭대기에 불사리탑을 세우려 하였으나 계속 쓰러짐에, 간절히 기도하였더니 하룻밤 사이에 칡 세 줄기가 눈 위로 뻗어 지금의 수마노탑, 적멸보궁, 사찰터에 멈추었으므로 그 자리에 탑과 법당과 본당을 짓고, 갈래사(葛來寺)라 하였다고도 전한다.

지금도 고한에는 갈래초등학교가 있고 상갈래, 하갈래라는 지명이 있다.

정암사는 숙종 39년(1713)에 중수되었으나 낙뢰로 부숴져 6년 뒤 다시 중건되었고, 1771년과 1872년에, 그리고 지난 1972년 다시 중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