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레꽃 아픔, 매화꽃 향기로... 용산 당고개 순교성지... 2018, 11, 11

2018. 11. 16. 15:00성지.성당

지리 상,

지하철 4호선 종점 인, 당고개는 노원구 상계동에 있지만

용산에는 당고개라는 이름의 순교성지가 있다.

 

당고개라 함은

옛날에 성황당이나, 미륵당이 있던 고개를 말한다.

우리의 토속신앙은 없어지고 그 자리가 천주교 순교성지가 된것이다.


용산 당고개성지는 베네딕도 교황의 방한 중에

시복되는 124위 중 한분 인, 이곳에서 순교한[기해박해, 1389] 10인 중,

이성례 마리아를 테마로 한 성지이다.


용산, 신계동 e편한 세상 아파트 단지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는 이색적인 성지이다.


당고개 성지 입구

 



성당 내부에 모셔져 있는 성모님


사무실


성화 '아홉분의 성인과 한분의 복녀 [심순화 작]


성당 내부


옥상에 꾸며진 하늘정원


옛날 꽃담을 연상하는 와당편을 이용한 담장과

한옥식 호두각 형태의 팔작지붕으로 극단적 인 종교적 색채를 최대한 덮어 얹은 듯 하다.


모자이크화로 그려진 아홉분의 성인과 한분의 복녀의 초상화가 세워져있다.


모자이크화의 첫번째 초상화


성 박종원 아우구스티노 [평신도 회장이었으며 성품이 겸손하고 온순하며 친절하였다고 전해 진다.]


각 성화마다 칼을 쓰고 승리의 월계수 잎을 들고 당고개를 넘어 처형장으로 가는 모습을 연상했다고 한다.


모자이크화 열번째 분으로 복녀 이성례 마리아이다.


당고개 성지는

기해박해 때인 1839년 12월 27~28(음)일 이틀간 천주교인 10명이 처형당한 곳이다.


그 중에 아홉분이 성인 품위에 올랐는데

함께 순교한 최경환 성인(1839년 기해박해시 순교)의 부인이며

한국의 두번째 사제였던 최양업 신부의 어머니인 이성례 마리아는 성녀품위에 오르지 못하고 복녀품위에 머물러 있다.

 

당시 이성례 마리아는

마카오로 유학을 가 있던 맏아들 최양업 신부를 제외한 다섯 명의 자식들과 함께 옥에 갇혔다.


부모와 함께 어린 아이를 투옥시키는 일은 국법에 없었으나

맏아들이 사제가 되기 위해 외국에 유학 가 있는 사실때문에 일말의 관용도 베풀어지지 않았다.


결국 세살짜리 막내가 빈 젖을 빨다가 옥에서 굶어죽자

이성례 마리아는 나머지 네 명의 자식들을 살리기 위해 일시 배교하고 옥을 나간다.


하지만 아이들이 동냥 나간 사이 스스로 옥으로 돌아와 다시 갇히게 된다.

 

6세에서 15세까지의 네 형제는

부모들이 갇혀있는 옥에 찾아가면 자신들 때문에 부모들이 배교할 것을 우려해 동냥을 해가며 살아간다.


어머니가 참수되기 하루 전

어린 형제들은 동냥한 쌀과 돈 몇 푼을 가지고 휘광이를 찾아가

어머니의 고통이 덜 하도록, 단칼에 베어줄 것을 부탁하고 이에 감동한 휘광이는 밤새 칼을 갈아 그 약속을 지켜주었다고 한다.

 

이성례 마리아는 이렇게 순교하였으나 일시적 배교때문에 시성되지 못했다.

 

하지만,

이러한 애절한 사연때문에 당고개 성지는 많은 순례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순교성지이다. 

 

성물과 성화가 있는 전시실


반대편 제대






아기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님.


구절초 한송이


당고개에서 순교한 열분


방한 한 베네딕도 교황께서 섬세함에 극찬했다는 성화... [심순화 作]


가톨릭성가 39번 하나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