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성모성지에서... 2019, 02, 23

2019. 2. 26. 22:33성지.성당

무명 순교자들의 순교지로

오랜 세월 잊혀진 땅이었던 곳.


1991년 10월 7일

로사리오의 성모성지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나

성모님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위로와 희망의 땅이 되고

평화를 위한 로사리오 기도가

바쳐지는 곳, 남양성모성지를 다녀왔다.

     남양 성모성지()는 병인박해(1866) 때

목숨을 잃은 무명 순교자들을 현양하는 순교성지로 한국 천주교회가 공식 선포한 곳이다.

 

치명일기와 증언록에 의하면 

남양의 순교자로는 김 필립보와 박 마리아 부부, 정 필립보, 김홍서 토마 등 4인의 이름만 기록되어 있지만

여러 정황으로 보아 더 많은 이들이 남양에서 숨졌을 것이라 추정되고 있다.

 

한국 최초의 영세자 이승훈의 손자로 서소문 밖에서 참수 당한 이재의가 남양의 백학 교우촌에서 성장했고,

1803년 순교한 제관득도 남양 지역에서 숨어 지내다 체포되었으며

남양 지역에 교우촌이 형성되어 있었던 점 등을 보아 일찍부터 천주교가 전파되어 신자들이 많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에

이름없이 희생된 이들을 기리기 위해 만든 천주교인들의 순례지가 바로 남양 성모성지이다.

 

남양성모성지에는

화강암으로 만든 높이 3.5m의 성모상을 비롯하여

예수 동상, 과달루페 성모상, 성 요셉상, 비오 신부상 등의 동상과

     길이 약 1km의 20단 묵주기도의 길, 십자가의 길, 초 봉헌실, 성체조배실 등이 조성되어 있다.




성지 입구


야외 미사터와 제대, 뒤에 보이는곳이 대성당을 짓는 공사장이다.


로터리 예수님 성상


성체 조배실


경당


경당 내부


경당의 제대

 

평화의 모후 왕관의 열두개의 별로 장식되어 있고 고상은 창밖에 있다.


로터리 예수님상


봉헌실


기원


성요셉상


성요셉상


남양성모성지의 대성당 조감도


로사리오 기도길 시작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신부[1894,1,8~ 1941, 8, 14]



폴란드 태생 인,

꼰벤뚜알 프란시스코회의 수도 사제인 콜베 신부는

프리멩슨 등 反교회주의자들에게 대항하여 성모 신심단체인 '성모기사회'를 설립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시대에

나치 독일에 정복당한 폴란드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 갇혀 있다가 탈옥한 수감자 대신

죽음을 자원하여 아사형을 언도 받았는데 장기간 생존해 있자 독극물 주사를 맞고 순교하게 된다.





비오 신부[1887, 5, 25-1968, 9, 23]

 

비오 신부는

교회사 최초로 1918년 10월 20일날

십자가의 다섯 상처인 예수의 오상[五傷]을 받고 50년동안 몸에 지닌채

극심한 고통속에서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죽는 날까지 몸과 마음을 바쳤다.



캘커다의 복녀 마더 데레사 수녀

 

1910년

마케도니아 [現 유고슬라비아]의 수도 스코페에서 태어난 마더 데레사 수녀는

1931년 로레토 성모 수녀회에서 종신서원을 하고

인도로 파견되어 수녀회에서 설립한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이 세상의 가장 낮은 자들과 함께 하라는 계시를 듣고

교황청으로부터 수도원 밖, 거주를 허락받아 거리에 나온것이 1948년도이다.

 

수녀복 대신 거친 사리를 걸치고

책상도, 의자도 칠판도 연필도 없이 웅덩이 옆에 쪼그리고 앉아

가난한 아이들을 가르친것이 이세상에 뿌린  사랑의 시작이었다.

 

1950년 캘커다 빈민가에

사랑의 선교회를 비롯 인도 각지에 구호단체를 세워

나병환자들, 헐벗고 굶주린 가난한 이들과 일생을 함께했다.


1997년 87세의 일기로 눈을 감았다.

 

'사랑은 탁월하거나 특별하지 않아도 됩니다.

지치지 않고 사랑하는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입니다.'


ㅡ마더 데레사의 어록중에...


남양성지 성모님상


피에타 상 [자비를 베푸소서]


로사리오의 길[총 20단이다.묵주알이 1000개?]


야외 미사터


과달루페 성모님과 태어나지 못하고 죽은 태아들의 무덤


멕시코 과달루페 성모님


자비의 언덕


자비의 예수님 성상


자비의 연덕에서 본 대성당 신축 공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