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에, 독특하고 화려한 카이딘 왕릉... 2019, 04, 11

2019. 4. 26. 14:34베트남

후에에서의 마지막 코스 인,

'카이딘 왕릉'을 관람했다.


카이딘 황제는 베트남 응우엔 왕조의 12대왕으로

31세인 1916년 왕위에 올라 1925년 11월 세상을 떠났다.


1920년부터 10년에 걸쳐 축조된 왕릉은

베트남과 프랑스의 양식이 뒤섞여 응우엔 왕조의 왕릉가운데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20세기초 베트남 건축예술의 대표"하는 건물이다.



입구부터 4군데의 계단을 오르게 되는데,

왕릉을 언덕위에 지어선지 계단의 합이 100개.

베트남 전쟁 중 폐허가 된 왕릉도 있으나,

카이딘 황제, 뜨 득황제, 민망 황제릉은 상대적으로 보존상태가

좋아 여행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황제릉으로 오르는

계단 난간에 장식 된 네마리의 돌조각 용.


두번째 계단


카이딘 황릉은 유럽에서 수입된 콘크리트와 목재를 사용해

프랑스식으로 만들어져 동양의 어떤 능과도 확연하게 구분되는 이색적인 모습을 보인다.


황제의 위업을 기리는 2층 6각형의 석조건물.

내부에는

황제의 아들 인, 바오다이가 아버지를 기리는 송덕비를 세웠다.


맨 위에 위치한 황제의 묘역인 천정궁(꿍띠엔딘)

황제가 프랑스 방문 때,

파리의 화려한 문화에 매료된 취향을 반영하여 지어졌다고 한다.


카이딘 황제의 묘역, 천정궁


천정궁의 내부


카이딘 왕의 시신이 안치된 '계성전'이 있으며 영정이 걸려있는 제단.


도굴을 방지하고자 가묘를 두었던 다른 황제릉과 달리,

카이딘 왕릉은 계성전 지하 14미터 아래 안치되어있다고 한다.




프랑스에서 제작된

청동에 금박을 입힌 1톤무게의 카이딘 황제의 등신상.

[사진을 잘 찍지 못해 왼편 3분의 1지점에 왕의 동상이 보인다.


천정에는 9마리 용이 장식되어 있고

내부는 세계 곳곳에서 만들어진 꽃조각병이나 타일 조각으로 모자이크 장식을 해두어

묘역이 아니라 마치 궁전에 들어온 듯한 화려하고 웅장함이 느껴진다.


식민지 시대에서도

이렇듯  화려한 왕릉을 건설하느라 백성들의 원성이 높았다고 한다.


황제가 실제로 사용했던 금장식의 화려한 식탁.


응우엔의 12대왕으로

1916년에 즉위한 카이딘 황제는 1925년까지 왕국을 다스리다

그해 폐결핵으로 사망했는데

죽을 무렵에는 심한 아편과 도박 중독자였다고 전해진다.


황제는 프랑스의 꼭두각시 왕으로

정사에는 관심없고 오직 사치스러운 생활을 즐겼다고 한다.


프랑스는

왕이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아낌없는 지원을 했다고 한다. 


카이딘 황제는

자신의 재위 중인 1920년부터 자신의 능을 건설하기 시작했고,

가 죽은뒤 그의 아들인 바오다이가 1931년에 완성했다.

바오다이는 이후, 실상 13대 마지막 왕이었으나

프랑스로 망명을 했기 때문에 베트남에서는 왕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당시 황제가 사용하던 화려한 집기들...


내부 관람을 마치고 나오며 다시 본 황제의 묘역


푸른색의 크리스탈 눈이 박힌 계단을 지키는 용


황릉 앞엔 

좌우로 콘크리트 석조로 만든 문,무 백관, 말, 코끼리등이 황릉을 호위하듯 2중으로 도열해있다.

실물 크기로 만들었으며

앞줄  문관은 신발,뒷줄 무관은 맨발차림인데 문을 숭상하던 당시 시대상이 반영되어 있다.

후에를 소개하는 책자와 팜플렛에는

거의 빠짐없이 등장하는 유명한 모습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많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찾고 있지만,

베트남인들에겐 원망의 대상이어선지 찾는 사람이 별로 없다고한다


한국 관광객들...


화려한 황릉의 관람을 아쉬운 마음으로 마치고

아이들이 있는 다낭으로 돌아 갈 차량을 기다리며 본...


다낭으로 돌아가는 길은 올때와 다른 길로 가는데

베트남에서 가장 긴 하이번 터널[길이 6킬로]을 지나고 있다.


저녁식사는

다낭 미케비치의 해물요리 전문점 '하이산 포'에서 하기로 했다.

 

아직 아이들이 도착하지 않아 기다리며 한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