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겨울 나들이... 2024. 12. 13

2024. 12. 16. 21:15남한산성의 풍경과 꽃

올해들어
스물한번째 남한산성에 올랐다. 
 
겨울철이라 야생화를 볼수는 없고 
눈이 오면 한번 더 오를수 있을지
이번이 마지막 산행이 될지 모르겠다.

 

겨우살이
 

새들이 따 먹어서인지 열매는 두어개만 남아있다.
 

눈을 돌리면 많기도 한 겨우살이를...
 

하필 스틱을 가져오지 않아
낙엽더미 밑이 얼어서 올라갈수가 없다. 가까이서 보는건 포기
 

푼지나무 열매는 거의 전멸...
 

푼지나무 열매를 새들이 잘 먹는다고 한다.
 

사위질빵 씨앗과 쥐똥나무열매
 

연못과 관어정이 있던 터.
 
소나무가 부러져있다.
 

지수당
 
현종 13년(1672)에 지어진 정자로
양반들이 풍류를 즐기던 곳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절사
 
병자호란(1636) 때
청나라에 항복하기를 끝까지 반대하던
홍익한. 윤집. 오달제등의 우국충절을 기리기 위해 지어진 사당이다.
 

현절사 앞 단풍나무숲
 

남한산성 순교자 성지의 성당
 
박해 70년간
(신해박해1791.  신유박해1801. 기해박해1839. 병인박해1866)
300여명의 천주교 교우들이 순교하였으며 이를 기념하여 지은 성당이다.
 
이름과 행적이 알려진 순교자는 36명이다.


순교자 현양비와 피에타(복자 한덕운 토마스가 시신을 수습하며 기도하는 모습)
 

순례자의 집.
 
아기를 업고 성서를 읽고 있는 말씀의 어머니상
 

연무관
 
인조 3년(1625)에
군사훈련을 하기위해 건립한 지휘소이다.
 
천주교 박해때는 신자들을 처형했던 장소이기도 하다.
 

느티나무(수령 400년이 넘음)와 연무관
 

참새 14마리
 

종각
 
천안 성거산 천흥사의 동종(銅鐘)으로
남한산성으로 언제 옮겨졌는지 알수 없다고 한다.
 
몸체에 새겨진 글귀에 따르면
고려 헌종 1년(1010)에 주조된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
이왕가 박물관으로 옮겨졌다가
해방 이후 덕수궁 미술관을 거쳐
현재는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종은
모조품으로 실제보다 3배 더 크게 제작되었다고 한다.

행궁의 정문. 한남루(漢南樓)
 
한강의 남쪽에 있는 문루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함.
 
 

침괘정
 
정확하게 지어진 시기나 용도는 알수 없으나
1751년 새로 고쳐 짓고 침괘정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기록에 따르면
백제 온조왕이 사용하던 공간이라고도 하고
화약을 찧었던 돌절구들이 있는것으로 보아
무기와 관련된 사무를 관장하던 곳으로도 추정된다. 
 
불을 때는 아궁이가 있고
굴뚝이 보이는것으로 보면 취침도 가능했던것 같다.
 

침괘정에서 본 풍경
 
잔설이 아직도 많음.

지난 폭설로 해를 입은 소나무 군락
 
남한산성에는
100년 이상의 소나무가 1만5000그루가 있는 명품숲이다. 
 
이번 푹설로
가지가 부러진 소나무가 300여 그루에 달한다고 한다.

행궁 앞. 인화관
 
중앙에서 내려온 관리나 외국 사신이 머물던 객사
 

버스 정류장에서 본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