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라테란의 성 요한 대성당과, 성 계단성당,,, 2012, 01, 05

2018. 1. 29. 07:38이탈리아

오후 일정의 첫번째로 들러 본 곳은, 
아쉬움을 준 콜로세움에서 불과 3분거리에 있는 라테란의 성 요한 대성당이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인도의 데레사 수녀의 모습을 한, 행상 할머니가
조잡한 장신구등 물건을 들고 다가 와 억지 기침을 하며 싸다 싸다를 외친다.

순례객의 외모만 보고 한국인인줄을 금방 아는시듯...




라테란의 성 요한 대성당은 성 지오반니 대성당이라고도 불리며,

로마 황제의 친위부대가 있던 라테란 궁전이 교황청으로 변신한 곳이다.
  
313년 밀라노칙령으로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라테란 가문의 여자와 결혼하면서,
지참금처럼 가져온 라테란 궁전을 교황(실베스떼르 1세)에게 선물하면서 교황좌로 바뀌게 되었다.
 
교황이 부동산을 갖게 된 첫 사례이기도 하다.
 
아비뇽으로 이전하기 전,
천년 가까이 교황좌가 있던 이 곳은
말틴 루터가 이곳을 뛰쳐나가 종교개혁을 부르짖으며
신구교 일치를 위한 라테라노 공의회가 다섯 차례 개최되었던 곳이며,
 현재까지 로마의 대주교좌 성당이고, 지금도 성 목요일에는 교황이 미사를 집전하며, 세족례를 하는 곳이도 하다.
 
제2차대전 중 
여기에서 비오 11세와 무소리니의 라테란 조약이 체결되어, 바티칸 시국이 탄생된 곳이다.
 
반달족의 침입, 지진 피해, 화재 등으로 무너지고 파괴되었으나 다시 재건하였다.

왼쪽 흰색 건물이 라테란의 요한 대성당이며,
오른쪽이 아비뇽으로 가기전까지 사용했던 교황청이었던, 라테란 궁전이다.

라테란 성 요한 대성당은

큰 문이 4개가 있는데 세상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문이라고 한다.

 

1300년 보니파시오 8세 교황에 의해 “희년”이 선포된 이후, 

25년마다 문이 열리고 있으며, 가장 최근에 열렸던 것은 1999년 12월 24일에

“다가오는 2000년 대희년”을 위하여 문이 열렸고, 지금은 콘크리트로 밀봉되어 있다. 

소원이 이루어 진다는

청동으로 장식된 성모님의 새끼 손가락과 아기 예수의 발.

라테란의 성 요한 대 성당은 안으로 들어 갈수록 밝아 지도록 설계가 되어 있었고
바닥은 아름다운 모자이크가 그려진 대리석으로 되어 있었으며, 제대 측면에 1700년경의 파이프 오르간이 있다.


성전 양쪽 벽에는 12사도의 석상이 있다.

 6m나 되는 사도들의 석상은 모두 베르니니의 작품으로 열두 사도의 특성이 잘 나타나 있다.
 

열 두 사도 중 하나인, 성 마태오


중앙 제대의 대형 감실이며,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의 청동상이 있는데 두 사도의 머리 부분 유골이 모셔져 있다.


대형 감실 뒤 쪽에 동으로 만든 발다키노


발다키노 내부에 '최후의 만찬' 그림이 동으로 조각되어 있다.

 
이 성당에는 최후의 만찬때 사용된 낡은 나무 제대가 보존되어 있어,
부활절 전, 성 목요일이면 교황이 이곳으로 이동하여 최후의 만찬 미사를 봉헌하는 유서깊은 교회이다.
 

발다키노 제대 위 쪽 중앙 돔에 있는 모자이크화.
 

예수의 반신 상이 위쪽에 그려져 있고 ,

아랫 부분에는 십자가 좌우에 성모 마리아와 세례자 요한 등이 그려져 있다.

마리아에 매달려 사도들보다 작게 그려진 붉은 옷의 교황도


 하늘나라에서는 교황보다도 사도나 성인들이 더 존중받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중앙 제대 아래에는 내려가는 계단이 있으며 그곳에 역대 교황의 시신이 묻힌 무덤이 있다.
 

순례와 묵상을 마치고 나오니 아직도 비가 내리고 있다.

 

성당 큰 문에서 본 , 작은 광장... 

 

 서두르지 않는 여유로움과 아름답고 조용한 유럽의 풍경이다. 

 

라테란의 성 요한 대성당과 마주한 곳에 자리한

스칼라 산타[거룩한 계단]로 알려진 성 계단 성당은
역사적, 예술적, 종교적 그림을 많이 소장하고 있는 점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원래의 건물은 1277년 지진으로 파괴되었기 때문에
교황 니꼴라오 3세는 코스마티家의 장인들로 하여금 복구하게 하였다.

이 때, 건물의 원형이 상당히 변형되었으므로 원래의 모습을 접할수는 없다.


성 계단 성당에는 28개의 대리석 계단이 있는데

1589년 이전에는 순례자들이 교황의 축복을 받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이 계단은 예수가
예루살렘의 빌라도 법정에서 재판을 받을 때 여러 차례 오르내렸던 계단을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모친 성녀 헬레나가 326년에 로마로 가져온 것이며 성년인 1450년에 현재의 모양으로 만든것이다.

작업을 맡은 도메니크 몬타나는 층계가 다치지않게 하려고 위에서부터 작업을 시작하였고


이후부턴 밟고 오를수 없으며 무릎만 닿게 하였다고 한다. [내려 오는 계단은 따로 있음]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 대리석 계단중 몇 군데에 예수께서 흘린 핏자국이 남아 있다고 한다.
 
로마의 성지중에서 순례자들이 무릎으로 계단을 오르며 육체적 고통을 직접 겪어 볼수있는 유일한 곳으로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예수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느껴 보려는 순례자들의 겸허한 자세를 느낄수있다.
 
교황의 소성당으로도 불리며 역대 교황님이 계단을 무릎으로 오르며 기도한다고 한다. 
 
지금은 대리석 계단에 나무를 입혔는데
얼마나 많은 순례객들이 무릎으로 기어 오르며 기도를 하는지 무릎이 닿는 부분이 움푹 들어가 있다.
 

성 계단 성당에서 라테란 성 요한 대성당 사이 광장에 세워진 오벨리스크는
로마에서 가장 거대하며 역시, 이집트에서 가져 온 것이라 한다.

  

이어서

로마에서의 마지막 일정이 되는 성 바오로 묘 위에 세웠다는 성바오로 대성당으로 이동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