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예루살렘, 성안나 성당과 벳자타 연못... 2012, 01, 12

2018. 1. 31. 14:15이스라엘


구 예루살렘,  황금 돔 사원에서 '성안나 성당'으로 가는 스테파노[사자문] 성문



성안나 성당과 빠드레 비안키 수도원이 함께 있는 곳의 정원으로 들어가는 중...


사람이 모여 있는 곳이 성안나 성당이며, 이 곳 정원빠드레 [비안키 수도원]에서 잠시 차례를 기다린다.



정원에서 한 컷...

 

뒤에 흰색으로 보이는 동상은 빠드레 비안키 수도원 창립자인, '라비제리에' 추기경이다.


성안나 성당
 
 
십자군이 예루살렘에서 철수 했을때 세운 성당 중 하나로 지금까지 잘 보존되어 왔다.
이 성당은 성모 마리아의 출생지이자, 그의 부모 요아킴과 안나의 집이 있었다는 지하실 위에 세워졌다
 

성모 마리아의 부모 인, 성 요아킴(Joachim)과 성녀 안나(Anna)에 대해서 성경에서는 일체 언급하고 있지 않았지만 기원 후 170-180년경에 쓰여진 “야고보 원복음서”에서 마리아의 부모와 탄생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몇몇 외경과 전승을 바탕으로 5세기 말부터 벳자타 연못가를 안나의 집터라고 추정하기 시작하였다.

이 자리에 '마리아 탄생성당'(오늘날의 성 안나 성당)을 건립하고, 9월 8일에 성모 탄생 축일을 지내왔다.

 

그 후 페르시아군에 의해 파괴 되었는데 1130년경 십자군에 의해 다시 지어진다. 

 

성 안나 성당은 성모의 모친 안나에게 봉헌한 성당으로 당시로선  가장 아름다운 로마네스크 양식의 교회로 지었다.

 

고딕식 둥근 지붕이 아름다우며, 음치가 노래를 해도 천상의 소리로 들릴 정도로 완벽한 내부 공간 구조를 가지고 있는 성당이기도 하다.

 

예루살렘 라틴왕국이 멸망한 후 십자군이 지은 대부분의 성전들은 파괴 되었지만
성 안나 성당만은 빼어난 아름다움 덕분에 '이슬람'의 살라딘 장군이 파괴하지 못하도록 하였고, 대신 '무슬림 신학교'로 사용하는 바람에 성전 건물의 원형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유일한 성전이기도 하다.
 
현재는 아프리카에서 포교하는 신부들이 관리하고 있다.


성안나 성당 내부



지하에 성모 마리아가 태어난 동굴과 이콘이 걸려있다.



벳자타는
고대 아랍어에서 유래한 명칭으로 어원상으로는 '자비의 집'을 의미한다. 
 
예수가 '벳자타 못가에서 많은 병자를 고치시다'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 연못은
고대에 키드론 계곡에서 흘러온 빗물을 모아 성전에 물을 공급하는 역할을 했으며,
직사각형의 형태로 깊이가 20m 정도 되었고, 면적은 120 x 60m 정도였다.
 
연못 주변에는 의학적∙종교적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건물들이 세워졌다.
 
특히
연못 동쪽에는 BC150년경부터 AD70년경까지 욕실과 병실 등이 지어져 대중들을 위한 치료소로 활용되었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모두 다섯개의 회랑이 있었으며, 예수가 이곳에서 38년 된 중풍환자를 안식일에 치유했다고 한다.

AD 134년경에
제2차 유대항쟁을 진압한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베데스다 연못 위에 로마의 신들 중 ‘치료의 신’인 에스쿨라피오(Esculapio) 신전을 건축했던 것이
고고학 발굴 결과 밝혀졌다.
 
5세기경 신전 자리에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된 비잔대성당이 세워졌다.
 
연못 북쪽의 성당 발굴터 바닥에 화려하게 장식된 십자가 모자이크가 발견되었는데,
이는 비잔틴의 테오도시우스 2세 황제가 십자가 바닥장식을 금지한 427년 이전에 성당이 지어졌음을 의미한다.
 
성당은 614년 페르시아군에 의해 파괴되었으며,
그후 십자군이 요한복음의 치유의 기적을 기념하고자 폐허 위에 작은 기념교회를 세웠다.
 
교회 건물의 끝은
계단으로 베데스다 연못과 이어지며, 계단 아래에는 로마시대에 지어진 저수조가 있다.




교회와 베데스다 연못은

크림전쟁 이후 1856년부터 프랑스 정부가 소유했으며 비안키 수도회위탁관리하고 있다.

 

고고학적 발굴작업은 1871년부터 실시되었으며,

비잔틴 시대와 십자군 시대에 세워진 웅장한 기둥들이 오늘날 순례자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