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예루살렘, 골고타의 예수 무덤 성당... 2012, 01, 12

2018. 1. 31. 15:02이스라엘

[이어지는 11처부터 14처까지의 십자가의 길은 여건 상, 사진은 찍지못했지만]
 
무덤 성전으로 들어오면 오른쪽에 높이 5m쯤 되는 골고타로 오르는 가파른 돌계단이 있다.
그 정상에는 두 개의 경당이 있는데 오른쪽에 있는 것이 가톨릭 소속 인, '십자가 경당'이다. 
여기서 예수의 옷이 벗겨지고 초와 쓸개를 마시게 하였으며 [십자가의 길 제 10처]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았다 [제 11처]
제대 전면, 모자이크엔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 곁에 성모 마리아가 서 있고 그 앞에 막달라 여자 마리아가 엎드려 울고 있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음을 맞이한다.[제 12처]
12처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매달린 곳에 마련되었다.

십자가가 세워졌던 자리가 실제 있으며
 예수가 큰 소리를 지르고 세상을 떠나자 성전 휘장이 두갈레로 찢어지고 땅이 흔들리면서 바위가 갈라졌다고 한다.
 
예수의 십자가를 세웠던 자리에 은으로 둥근 표시를 해두었는데 순례객들이 입을 맞추어 경의를 표한다.
제대 바로 아래에 있다.
 
[11처와 12처는 가톨릭 소유이다.]
 
왼쪽에 그리스 정교회 소속 '갈바리아' 경당 사이에 '마리아의 슬픔'이라는 조그만 제단이 하나 있다.

제자들이 예수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림[제 13처]

성모 마리아가 예수의 시신을 받아 안은 자리에 마련된 것이다.

심장에 칼이 꽂힌 조각상은 성모님의 슬픔을 단적으로 나타낸다.



 골고타 정상에서 내려와 왼쪽으로 돌면 예수의 무덤 자리에 기념묘가 세워져 있다. 


 기념묘는

둥근 지붕이 딸린 직육각형으로 되어 있는데 바닥이 8m×5,90m이고 높이가 5,90m로 대성전 동편 중앙에 자리잡고 있다.

예수가 묻혔던 곳은

암석을 파서 작은 동굴을 만들고 그 안에 시신을 안치한 뒤 둥근 돌을 굴려 입구를 막는 형태였다(마태 27,60 참조). 

 

오늘날 동굴 무덤의 자취는 사라졌고

그 위치에 세워진것이 지금의 무덤 성당이며 십자가의 길 마지막, 즉 '14처'에 해당하는 곳이다.

[13처와 14처는 그리스 정교회 소속이다.]

 예수 무덤에 묻힘을 묵상하는 제 14처는

6개 종파, 즉 카톨릭, 그리스 정교, 곱트교, 시리아 정교, 아르메니아 교회, 에티오피아 교회들이 분할 관리하고 있는데,

그리스 정교회가 가장 넓게 관리하고 있다.


이 곳이

예수가 골고타에서 십자가에 못박히고, 죽으시고, 묻힌 곳이며

부활한 예수의 역사적인 흔적이 담긴 곳으로 '예수 무덤성당' 즉, '성묘 성당'으로 불리우는 곳 이다.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는

324년 예루살렘으로 순례를 와서 예루살렘 주교에게 골고타와 예수 무덤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황제에게 청해 신전을 헐고 그 후 10년이 흘러 예수의 죽음과 부활기념 성전을 세운다.
 
이 기념 성전은 

614년 페르시아군에 의해 파손되고, 629년 보수되지만 1009년 카이로 출신 '칼리프 엘 하킴'에 의해 산산조각이 나게된다.

이것이 

'십자군 운동'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성전은 보수 및 개조되어(1149-1180년)

오늘날 성전의 모체가 되었으며 이후 예수 부활성당에서 무덤성당으로 명칭이 바뀌게 되었다. 
 
이후,

1545년 지진으로 종탑을 비롯 많은 부분이 파손되었고,

1917년과 1728년 두 차례에 걸쳐 보수하였으나 1808년 화재로 인해 상당 부분이 타버렸다.

당시 유럽은

나폴레옹의 전쟁시기라 라틴교회는 성전을 보수하기 위한 여건이 좋지 않았던 반면,

그리이스 정교회 측에서는 러시아로부터 경제적 원조를 받고 오스만 터키의 외교정책을 힘입어

성전을 보수하고 보수한 부분을 자기들의 소유로 만들었다.

이 때가 성전의 소유권을 놓고 치열하게(?) 각축전을 벌이던 시기였다. 

1834년 지진으로 성전은 다시 많은 부분이 파손되었으며,

라틴교회와 정교회가 공동으로 성전을 보수하였으나 1927년 지진으로 다시 많은 부분이 파손되었다.

그 후

1959년 라틴, 아르메니아, 정교회가 합의하여 1961년부터 재건 및 보수가 되었다.

예수가 십자가 형벌을 받은 곳은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시내 근처 '골고타'라고 하는 곳이다.


예수가 묻힌 곳은 골고타 근처에 있는 정원의 새 무덤이었는데

그 무덤은 입구를 막을 수 있는 둥근 형의 커다란 석문이 놓여 있었다.


무덤의 원래 주인은

예수를 몰래 따르던 당시 유다 최고 위원이었던 '요셉'으로 죽은 예수를 자신의 무덤에 안치하였다.
 
골고타는 '해골산'이란 뜻으로 당시엔 무덤이 즐비한 블모지였는데

예루살렘을 로마의 식민지로 만들어 버린 하드리아누스 황제에 의해 편편하게 깍이게 된다.


무덤성당 안에 있는 십자군 경당.
 
예루살렘과 베들레헴 등의 성지를 놓고서
교회 세력간의 다툼(그리스 정교회와 라틴, 아르메니안, 꼽틱, 시리아 등등)과 유럽 강대국들간의 세력 다툼으로 인해
소유권이 여섯개의 그룹으로 나뉘지만 현재는 1852년에 체결된 "현상 유지법"(statu quo)에 의해 더 이상 변동될 수 없는 상태로 있다.
 
무덤성당 역시, 크게는 그리스 정교회가 주도권을 갖고 있다고 볼수 있다.

가톨릭은 이곳 십자군 경당에서 미사 때 악기에 맞춰 성가를 부를수 있으나

다른 정교회에선 악기없이 무반주로 미사가 봉헌된다.


발현 경당으로

로마 가톨릭에서 새로 마련한 성묘 가까이의 무덤성전이다.

 

이성전 양 쪽에 십자가의 길을 나타낸 14처가 있고

암흑을 상징하듯 어두운 실내지만 푸른 바탕에 별이 반짝이고 있어 부활의 희망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전승에 의하면 부활한 예수가 이곳에서 가장 먼저 성모님에게 발현했다고 한다. [가톨릭 소유]




이곳은

부활한 예수가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발현한 것을 기념하는 제대로 '가톨릭'의 소유로 되어 있다.


무덤성당에서 참배 예절을 하기 위해 줄을 섰는데

많은 순례객들 뒤를 따라 입장을 하려면 기다리는 시간이 적어도 2시간 이상이라고 한다.

 

이날 우연히 이 곳서 한국 신부님을 만났는데

이 분은 작은 형제회[프란시스코]소속으로 현재 예수님 무덤 성당에서 소임하고 있는 테오필로 신부님이다.

 

무덤 입장을 기다리며 무덤 성당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 주셨다.


무덤 성당 전면


위에서 본 예수 무담 [사진 빌림]


무덤 위의 천정의 쿠풀라[사진 빌림]

 

12개의 별의 형상으로 12제자를 상징한다.
이 곳은 잦은 지진에 대비해서 철구조물로 만들었다고 한다.


[사진 빌림]


무덤모습


무덤 입장


무덤으로 입장하는 문은 아주 작아 허리를 굽히고 들어가야 한다.

 

입구엔 무덤을 막았던 돌의 일부가 있으며 조금 더 들어가면 천사들이 나타났던 공간이 있다.

실제 무덤은 맨 안 쪽에 있다.


무덤 정면 입구위에 촛불은 
맨 아래가 그리스 정교회, 가운데가 아르메니안 정교회. 위쪽이 가톨릭 교회 소유.
 

성당 출입문 맞은편에 예수님의 시신를 염한 곳이 있다.(요한 19,40)

 

제자들은 예수의 시신을 모셔다가 유대인들의 장례 관습대로 향료와 함께 염포로 묶었다.

예수를 십자가에서 내리고, 향료를 발라 무덤에 묻는 장면의 모자이크가 보인다.

 

예수 시신을 염했던 돌에 순례객들이 향료를 바르고 있다.


예수 시신을 염했던 돌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

 

이것은 12세기부터 공경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주위의 촛대를 봐도 알수 있듯이 가톨릭과 그리스 정교회 그리고 아르메니안 정교회의 공동 소유이다.

 

촛불을 켜는 쪽, 청소를 하는 쪽, 그리고 성당 벽면은 어느쪽의 그림이 걸려 있느냐에  따라 심지어 성당의 벽면들까지 소유가 나누어져 있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숨진 골고타 바로 아래,

유대인들의 전승에 따르면 전 세계의 중심이요, 전 인류의 심장에 속하는 예루살렘에 아담의 묘가 있다고 하고,

이 전설이 좀더 구체화 되어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의 십자가가 세워진 바로 아래에 아담의 묘가 있다고 믿었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흘린 피는 바위 틈으로 스며들어 아담의 두개골을 흠뻑 적셨고,

이 피로 인해 아담은 구원되었다는 신학적인 해석까지 생겼다고 한다.

 

아담 경당은 그리스 정교회 소유이다.  

무덤 성당은 안쪽과 바깥쪽 모두 각각 자물쇠를 잠근다.
바깥 열쇠는 이슬람에서 가지고 있고, 안쪽은 그리스 정교회에서 가지고 있다고 한다.

 

무덤 성당은 이스라엘에서의 순례 중 가장 핵심이 되는 곳이었으나

기다리는 시간이 많이 지체되고 이 곳을 끝으로 이스라엘을 떠나야 하기 때문에 서두른 탓에 사진은 잘 찍지 못했다.

 

언제나 뒤돌아 떠날땐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다시 밟을수 없는 땅이기에 미련이 더 많이 남는것이 아닌지...